7월 말부터 8월 말까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모 기업으로 단기현장실습(IPP)을 다녀오게 되었다. 학교 규정상 졸업요건 중 하나기 때문에 우리 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수행하는 실습이지만 SNS에서 부정적인 후기를 워낙 많이 들었기 때문에 실습을 수행하기 전에 걱정이 좀 됐지만 끝나고 보니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4주는 너무 짧아서 금방 헤어진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실습 기업은 QNX 및 비전 시스템 솔루션을 판매하거나 관련 사업을 수주하면서 2001년 설립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튼튼한 중소기업이었다. 사업 내역을 보면 주로 교통 단속 카메라나 관련 특허를 취득하면서 많은 활동을 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주변(같은 학교가 아닌)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가서 커피나 타는 것 아니냐, 4주면 잡일만 하다 온다 같은 얘기를 많이 들어서 나에게 어떤 회사 이익에 연관되는 작업을 시키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특히 컴퓨터 비전은 내 진로 분야(정보보안)도 아닌 데다가 학교에서 한번도 관련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어서 뭘 시킨다고 해도 제대로 수행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실습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그런 걱정이 커졌던 것 같다.
다행히 같은 기업에 나보다 한달 먼저 실습을 갔다온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저런 얘기를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기업도 요즘은 수주한 사업 관련해서 일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우리같은 실습 학생에게 어떤 업무를 맡기진 않고 몇가지 수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기업 임원과 면담 후 4주간 수행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 말만 들으면 그냥 실습 학생을 방치하는 것 같지만 들어보니 직원들이 실습 학생들에게 신경을 많이 써준다고 한다. 나는 안그랬지만 친구는 매주 진행보고서를 작성하여 이메일로 제출했을 정도.
실제로 서울에 올라가서 출근해서 받은 첫인상은 진짜 회사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물론 소규모 중소기업인데다가 큰 사무실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장비들이 늘어서 있고 직원들이 각자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니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느낌이었다. 출근하자마자 대표님과 면담 후 이번 주 내로 하고싶은 프로젝트를 3가지 정도 조사해오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영상처리, 그중에서도 몇번 들어본 OpenCV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를 구상했었다.
나름대로 몇가지(마스크 착용여부 검출, 제스처 인식, 물체 추적 등) 프로젝트를 구상해보면서 처음으로 컴퓨터 비전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문제는 이런 프로젝트가 4주 내로 완성 가능할지 나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프로젝트 규모를 확인하려고 이런저런 예제들을 계속 찾아보고 실행시키다보니 프로젝트 자체에 대해서 심도있게 구상하지 못한 점은 좀 아쉬웠다.
결과적으로 수행하게 될 프로젝트는 OpenCV 내의 Tracker들에 대한 비교조사였다. 내가 제안한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물체 추적, Object Tracking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하신듯 한데 나는 영상 처리 관련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이것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마 이쪽에 관심이 있다고 오해하신 것이라 생각한다. 뭐 어쨌든 영상 처리 솔루션 회사에 와서 다른 개발을 하기도 뭣한 노릇이라 결국 이쪽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내가 소속된 곳은 기업 내 AI 연구소였는데 연구소장님한테 세부적인 지시를 받게 되었다. 일단 사용하고자 하는 OpenCV Tracker를 몇가지 조사해오라는 과제를 받았는데 이후 며칠동안 회사 일이 바쁘다보니 따로 면담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고 나도 선뜻 주변 직원들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했던 상황이라 서로간의 일종의 '비동기'가 이루어진 채로 한 주가 지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언가 진척사항을 보여야 한다는 정체불명의 압박감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물론 주변에서는 실습학생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회사 업무에 관련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했지만 왠지 나 스스로가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3주째로 들어선 후에는 중간점검을 통해 OpenCV Tracker를 비교하고 영상에서 원하는 Object를 Tracking할 수 있는 정도까지 구현해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문제는 이 '비동기'때문에 이미 내가 해당 애플리케이션을 구현해놨고 지금은 Object Detection에 힘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연구소장님도 아직 내가 Tracker에 대해 조사하느라 딱히 진행상황이 없는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뭔가 어긋나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느낀 문제점이 긍정적인 상황이든 부정적인 상황이든 주변 사람들, 특히 업무관계가 조금이라도 얽혀있다면 항상 진척상황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무슨일을 하고있는지 잘 알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단순 실습생이 와서 혼자 프로젝트하는 내용이었으니 큰 문제가 없었지만 다른 팀원들과 협업하게 되는 일에도 이렇게 비동기가 일어난다면 그 결과가 좋지는 않을것이다.
뭐 어쨌든 나는 계속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4주째에는 직원분들에게 이번 실습동안 수행한 내용에 대해 발표해야 했기 때문에 슬슬 프로젝트를 마무리짓고 발표자료를 작성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생각보다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걸렸기도 하고 그냥 결과물만 보여주는게 아니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구현했는지, 그리고 프로젝트에 지시받은 사항(OpenCV Tracker 비교분석 결과) 등도 같이 설명하다 보니 이틀정도 걸린것 같다.
이렇게 4주간의 실습이 끝나고 더이상 가산디지털단지 근처에 올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지막 퇴근길에 감상에 젖는 스스로를 보면서 약간 놀라웠다. 게시판에 올라오던 그 많은 부정적인 후기들에 비하면 정말 만족스러운 경험이었기도 하고 만약 내가 컴퓨터 비전에 관심이 있거나 향후 취업하고자 하는 분야였다면 큰 도움이 됐을것이란 사실때문이었다.
아쉬웠던 것은 4주는 생각보다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컴퓨터 비전에 대해 어떤 지식을 얻거나 영상 처리 응용 경험을 얻을 수는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렇지만 조직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때까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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